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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채용 문화는 AI로 인해 퇴보하는가

어니언킴 2025. 8. 22. 17:33

기업들은 왜 학벌을 채용시 주요 기준으로 보는가? 지원자는 넘쳐나고 기업들의 TO 는 한정되어 있는데, 지원자의 역량을 판단하는 지표로 학벌보다 나은 대안을 못찾아서가 아닐까. 기업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역량 판단에 더 좋은 평가지표를 찾았다면 활용했을 것이다.

 

이런 경향성은 실무의 역량을 평가하기 어려운 직군 또는 상황에서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경영관련 직군을 한번 생각해보자. 지원자의 경영 역량을 어떻게 판단할것인가? 실제 경영에 참여하는 경험을 쌓으면 역량이 있는 것인가? 실무 경험은 쌓기가 어려울 뿐더러 관련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이 경영 성과와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판단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의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표면적인 학벌에 의존하게 되는 듯 하다.

 

반면 지원자의 실무 역량을 직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한 분야는 굳이 학위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게임 및 웹 개발, 엔지니어링, 디자인, 영상 제작 등 명확한 결과물이 나와 평가를 받는 분야들이 그럴 것이다.

 

개발 붐이 일어났던 18년-23년, 적어도 개발판에서는 학벌과 학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고졸출신 테크 리드도 많이 나왔고 비전공자들이 부트캠프를 듣고 대기업에 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렸다. 그 배경에는 개발판에서는 그 사람이 만든 코드와 결과물로 그 사람의 역량을 판단할 수 있다는 가정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실력있는 개발자들은 주니어의 프로젝트 구조와 코드 몇줄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과 역량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굳이 대학 학위가 아니어도, "나 실력 있는 개발자에"요 라고 코드로 말 할 수 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개발판, 학벌이나 배경보다는 기술적 역량 등의 본질을 보는 업계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이 업계에서는 내가 열심히 갈고 닦으면 그만큼 인정 받는곳이구나 하고. 그런데 AI 가 나오며 업계가 변하고 있다. 바이브코딩의 시대가 왔고, 누구든 괜찮은 퀄리티의 프로젝트를 찍어낼 수 있는 세상이 됐다. AI보다 코드를 잘 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됐고 잘 활용하는지 여부도 그 기준이 명확치 않다. 개발자가 직접 코드를 작성하지 않으니, 코드를 보고 개발자의 역량을 판단한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개발을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것이다.

 

최근 업계는 스펙 인플레가 심하다. 최근 입사한 신입 친구로부터 "요즘 취업하려면 프론트, 백, sql, AI, 클라우드, 인프라, 도커, k8s 프로젝트는 다 기본으로 하고 와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게 말이 되는가, 대졸 신입이 이 정도를 다 경험하고 현업을 오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AI 가 있으면 못할것도 없다 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넓은 지식을 많이 갖는것이 바이브 코딩의 시대에 새로운 역량지표로 제시되는 듯 하다.

 

이러한 인플레는 단순 개발 경험의 측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기업들도 점점 지원자를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 AI가 작성해준 코드, README, 이력서, 논문, 포트폴리오보다 학벌과 전공, 학위 등의 가치를 더 신뢰하는 듯 하다. 주변에 최근 채용된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이 좋은 대학 출신의 전공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인의 역량 역시 코드나 프로젝트 경험보다는 학벌과 경력, 학위로 판단하는 문화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문과놈들은 실력 판가름이 안되니까 학벌이랑 자격증들을 보는거라고, 농담을 하던 때가 있었다. 토익/오픽/컴활/한국사 등 자격증에 학회에 공모전까지 스펙을 열심히 준비하던 문과 친구들을 보며 이과로서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발자놈들도 다를게 없다. 너나 나나 실력 판가름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고 여러 기술 스택을 도장깨기 해야하는 모습들은 자격증과 다를게 없다. 전공과 학벌은 다시 중요해졌고 고졸 CTO, 비전공자 취업 신화는 다시 옛말이 됐다. 한때 실력과 본질을 보던 선진 개발판은 AI 로 인해 다시 학벌과 경력만을 보던 "그 시절"로 퇴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