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익명 커뮤니티를 좋아합니다. 아니, 제 생각에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익명 커뮤니티를 좋아합니다. 굳이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서구권에서는 나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커뮤니티 또는 SNS(페이스북, 링크드인, 레딧 등)가 흥행하는데 반해 유독 한국에서는 에브리타임, 블라인드 등의 나를 적극적으로 숨기는 커뮤니티가 흥행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왜 유독 대한민국 사람들이 익명 커뮤니티를 좋아하냐구요? 그것은 문화 심리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의 일이에요. 제게 중요한 것은 "제가 익명 커뮤니티를 좋아하고 대한민국 사람들도 익명 커뮤니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에요.
당장 제가 익명 커뮤니티를 좋아하는 이유는 "진실됨"이에요. 모든걸 숨기는 "익명 커뮤니티"에서 "진실됨" 이 무슨 말이냐구요? 우리 모두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가면을 쓰고 있잖아요. "진짜 나"가 아니라 "나로 보여져야 하는 나"의 모습의 가면이요. 페이스북이나 네이버 카페 같은 나를 특정할 수 있는 SNS/커뮤니티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나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에서의 가면을 내려 놓고 "가면 안에 있는 나"가 모여서 솔직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것이 좋았어요.
하지만 여러 익명 커뮤니티를 써보면서 딱 이거다, 싶은 커뮤니티는 없었어요. 각 커뮤니티마다 좋은 점들도 있는 반면에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 이렇게 개선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익명 게시판에 대한 인사이트들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인사이트 1. 디씨는 올드하고 에타나 블라인드는 폐쇄적이다.
- 디씨
먼저 우리나라 커뮤니티 이용자 순위를 살펴볼까요?

출처: https://waffleboard.io/ranking
디시인사이드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익명 커뮤니티에요. 다른 커뮤니티들과 비교했을 때 최소 2배 이상의 방문자 수를 갖고 있는 대단한 사이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디씨를 사용하면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어요. 분명 월 2억이 넘는 방문수를 자랑하는 디씨인데, 주면에 디씨를 이용하냐는 질문을 하면 누구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너 디씨 해? 라고 물으면 누구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데 방문자 수가 저렇게 많을 수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어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임에는 분명하지만, 디씨가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이용한다고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는 익명 커뮤니티들이 갖는 공통적인 특징이 아니냐구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블라인드나 에브리타임을 이용하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잘 이야기 하잖아요. 대한민국 최대의 종합 커뮤니티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좋지 못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디씨가 갖고 있는 컨텐츠가 음지 성향의 글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제가 사용하면서 남들에게 당당한 커뮤니티를 사용하고 싶었고 다른 사람도 그런 needs 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에브리타임 및 블라인드
저는 에타나 블라인드를 즐겁게 이용했지만 에타나 블라인드는 모든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분명 아니에요. 에타는 학교 인증을 거쳐야 하고 블라인드는 회사 인증을 해야해요. 즉, 두 서비스 모두 특정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이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서 모이는 폐쇄형 커뮤니티에요. 물론 폐쇄형 커뮤니티가 가지는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해서 활동할 수 있는 오픈형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사이트 2. 사람들은 본인의 신상을 숨기면서도 본인의 정보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숨기는 익명을 좋아하지만 또 동시에 나를 드러내고 싶어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블라인드에서는 나에 대한 신상 정보는 기본적으로 모두 비공개이지만 내가 재직하는 회사는 모두에게 공개돼요. 블라인드에서는 "직장"이라는 정보가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유저들이 궁금해하고 공개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러한 형태의 커뮤니티를 "반(Half)익명 구조"의 커뮤니티라고 정의해요. 기본적으로 닉네임을 비롯한 신상 정보는 모두 익명이되,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는 공개하는 커뮤니티. 예를 들어, "MBTI" 를 주제로 한 게시판에서는 유저들끼리 MBTI만 공개되는 커뮤니티인 거에요. 저는 이러한 "반익명 구조"의 커뮤니티가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MBTI" 를 주제로 한 게시판에서는 유저들끼리 MBTI만 공개되는 커뮤니티인 거에요. 저는 이러한 "반익명 구조"의 커뮤니티가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사이트 3. 오픈채팅과 커뮤니티를 결합하면 어떨까?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저만 해도 사실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남들의 글을 "눈팅" 하기만 하는 것 같아요.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사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은근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문득 카카오톡 오픈 채팅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채팅의 형태로 글을 올리는데 부담없이 소통에 참여하고 글을 쓰는 것이 신선하더라구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비슷한 관심사로 모인 게시판 사람들끼리 오픈 채팅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비슷한 관심사로 모인 게시판 사람들끼리 오픈 채팅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22년 12월, 위와 같은 인사이트들을 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프로덕트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원하는 주제별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 사용자들이 컨텐츠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으면서
- 가입 절차가 간단하고 대상을 한정하지 않으며
- 게시판 별로 오픈 채팅이 가능하고
- 반익명 구조의 오픈 커뮤니티
22년 12월부터 23년 6월까지, 무려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려서 MVP를 만들었어요. 프로덕트를 개발하면서 있었던 여러가지 우여곡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꼭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어떤 방식으로 인사이트를 적용하고 문제를 해결했는지 이야기해보려 해요.
문제 해결
문제 해결 1. 다양한 주제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해요. 많은 커뮤니티들이 다양하게 게시판을 운영하지만 많은 경우 게시판 및 카테고리를 운영자가 정해놓은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취향 관심사를 모두 반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커뮤니티에서는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주제로 쉽게 게시판을 만들 수 있게 했어요. 버튼을 하나만 누르면 복잡한 절차 없이 게시판을 바로 만들 수 있고 관리자 페이지에서 직접 운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축구", "음식" 등의 단순한 카테고리 형태의 게시판이 아니라 "좋아하는 유튜버 추천" 등의 다양한 주제의 게시판이 생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문제 해결 2. 컨텐츠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이 나쁘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게시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분명 부적절한 컨텐츠의 게시판과 게시글이 생길 것이고 이는 사용자의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저하시켜요. 게시판 및 게시글 검열을 통해서 이를 방지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운영자의 검열이라는 것 자체가 사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가지 장치를 적용했어요.
1. 사용자들이 구독한 게시판의 글만 피드에 노출시킨다.
2. 게시판의 관리자가 직접 게시판 운영 방침을 설정하고 직접 게시글을 검열한다.

우선 사용자의 피드에 모든 게시판의 글을 노출시키지 않아요. 사용자가 구독하고 관심있어하는 글만 피드에 노출시켜서 부적절한 게시판의 글이 노출되는것을 방지해요. 물론 사용자가 원한다면 모든 게시판의 글을 확인할 수도 있어요.

게시판의 관리자는 본인이 직접 게시판에 이용 수칙을 설정하고 이를 어긴 글을 직접 검열할 수 있어요. 게시판 관리자는 유저들이 신고한 신고사항도 확인하거나 특정 유저의 게시판 이용을 제한할 수도 있어요.
즉, 유저는 본인이 원하는 게시판의 글만 피드에서 확인하고 게시판 관리자는 운영 방침에 맞게 컨텐츠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부적절한 컨텐츠들이 사용자에게 노출되는것을 방지하고 있어요.
문제 해결 3. 가입 절차가 간단하고 대상을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커뮤니티들을 사용해보면서 느낀 점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로그인을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아무래도 귀찮은 절차를 거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아이디 및 비밀번호 등 내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어서 인 듯 해요.
이 커뮤니티에서는 로그인을 위해 아이디도, 비밀번호도, 이메일도, 심지어는 로그인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어요. 그저 사이트에 접속해서 게시글 몇개를 보다보면 그 어떤 절차도 없이 자동으로 로그인이 된답니다. 사용자들은 본인의 개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로그인 된 계정으로 게시판 구독도 할 수 있고, 댓글도 달고 게시글도 작성할 수 있어요.
이 커뮤니티에서는 로그인을 위해 아이디도, 비밀번호도, 이메일도, 심지어는 로그인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어요.
기술적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구요? 정확히 말하자면 가짜 계정을 만들어서 사용자가 사용하는 브라우저에 저장하는 거에요. 쿠팡에서 로그인 하지 않아도 내 조회 기록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주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사용자가 가짜 계정을 이메일로 연동시키고 싶으면 이메일을 연동해서 브라우저 및 디바이스에 구애받지 않고 계정을 사용할 수도 있어요.
문제 해결 4. 게시판 별로 오픈채팅이 가능해야 한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게시판을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오픈채팅을 나눌 수 있어요. 게시글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채팅으로 가볍게 소통할 수 있는 장치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문제 해결 5. 본인의 정보를 드러낼 수 있는 반익명 구조
MBTI 게시판에서는 유저들의 MBTI가 공개되고 연애 상담 게시판에서는 유저들의 성별 및 나이대가 공개돼요. 조기 축구 게시판에서는 유저들의 축구 포지션이 공개되구요. 아직 서비스에 적용 되지는 않았지만 성별, 나이, 이메일, 위치 등의 정보는 추후 인증 절차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어요. 익명 커뮤니티라고 모든게 비밀인 것이 아니라 게시판 성격에 맞는 유저들의 정보가 함께 공개되면 더 풍부한 커뮤니티가 되는 것 같아요.

경험 요약
이상으로 제가 익명 커뮤니티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인사이트들과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공유해보았습니다. 구상한 MVP를 만들면서 디씨, 블라인드, 에타를 비롯해서 루리웹, 매니아, 4chan, Reddit 등의 많은 커뮤니티를 사용해보며 인사이트를 얻었어요. (특히 Reddit 의 경우에는 정말 잘 만들어진 커뮤니티라고 느꼈고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여러 커뮤니티를 사용해보며 느낀 하나의 결론이 있다면, 세상에는 장점만 있는 완벽한 커뮤니티는 없다는 것이에요. 커뮤니티에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또 그 장점을 좋아하고 단점을 감수할 수 있는 유저들이 모이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커뮤니티를 빌딩할 때 내 커뮤니티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설정하고 유저에게 어필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익명 커뮤니티들의 장단점을 정리해봤습니다.
- 디시인사이드
- 장점: 쉬운 접근성 / 많은 사용자 / 여러 주제의 카테고리
- 단점: 부적절한 컨텐츠 / 유저들의 안좋은 인식 / 획일화된 주제의 카테고리
- 에브리타임 및 블라인드
- 장점: 폐쇄성이 주는 유저들끼리의 유대감 / 학교, 직장 인증을 통한 신뢰 / 유저들의 공통된 관심사
- 단점: 폐쇄성으로 인한 접근의 어려움 / 복잡한 가입 절차
- 나의 커뮤니티
- 장점: 쉬운 접근성 / 다양하고 창의적인 주제의 게시판 / 반익명 구조가 주는 재미 / 오픈 채팅을 통한 쉬운 소통
- 단점: 오픈된 커뮤니티에 대한 유저들의 불신 및 거부감 / 많지 않은 사용자와 컨텐츠(현재 시점)
그리고 저는 현재 MVP 개발을 완료한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풀고 있어요.
1. 어떻게 하면 커뮤니티에 양질의 컨텐츠를 생성하고 유저를 유입시킬 것인가?
2. 어떻게 하면 SEO(검색 엔진 최적화)를 개선시키고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상위 결과에 노출시킬 것인가?
3. 구글, 인스타 등의 광고를 통해 커뮤니티를 홍보하고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떤 과정과 절차가 되어야 하는가?
정답이 없고 어려운 문제인 만큼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험을 해보고 있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해당 경험도 꼭 문서로 정리해 볼게요.
혹시 저와 비슷한 문제를 풀고 있거나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편하게 커피챗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MVP 사이트: n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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